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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 기자의 할 일, 저널리즘 에세이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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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 기자의 할 일, 저널리즘 에세이

포르체

김성호 (지은이)

2023-01-11

대출가능 (보유:1, 대출:0)

책소개
저자소개
목차
기자의 사명, 소외된 목소리를 듣고 당신의 편이 되는 일
외롭고 힘없는 소수의 편에 서던 기자가 사표를 던졌다!

저널리즘 상실의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하여


“오늘날 기자를 한다는 건, 그 모든 무력함과 한심함 사이에서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저자는 언제 어디서든 부지기수로 무너지는 자긍심을 꼿꼿하게 세우려 노력했다.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는 저널리즘 상실 시대에 자주 부끄러워지는 우리가, 가끔 행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들어야 한다는 기자의 자조적 고백이다. 저자는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를 통해 사라지는 저널리즘에 관해 낱낱이 드러내며, 우리가 지켜야 할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를 말한다. 책에 담긴 기자의 유려한 문장과 섬세한 시선은 출판사 편집부 전원을 감동하게 했고, 동시에 그의 다음 행보를 걱정시킬 만큼 통렬하고 솔직했다. 이 책은 오늘날 삼선 슬리퍼를 신었다는 이유로 박대당한 기자와 한쪽 프레임에 초점 맞추기 급급한 기레기 사이에서 ‘저널리즘이란 무엇인지’ 우아하게 한 방 먹이고 있다. “당신들이 기자냐?”라고.

“선을 다해 일했던 만큼, 후회 없이 사표를 던졌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회의 이면,
그곳에서 발견한 이토록 절실한 희망


저자 김성호는 연세대학교 법학과 출신의 기자로, 6년간 세상에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 외쳤다. 법학과를 나왔지만 법조인이 되리라는 생각은 없었으며, 영화와 글을 좋아해 영화감독과 소설가 중에 진로를 고민했다고 한다. 2년쯤 기자 생활을 하다 돌연 항해사 교육을 받고 외항 상선을 탔다. 인도양과 대서양, 수에즈 운하를 오가며 여러 항구를 돌았고, 배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봤다. 똑같은 말만 반복해 사람을 질리게 하던 이가 자신의 쉬는 시간을 반납해 가며 미끄러운 계단에 고무를 씌우고, 투덜거리기만 하던 다른 이에게서 누군가 아플 때 가장 먼저 약을 가져다주는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어쩌면 만날 일 없는, 만날 수조차 없는 이들의 “예기치 않는 미덕을 발견”하는 순간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다. 마침내 누구도 발견하지 못하는, 보려고 하지 않는 이들의 ‘이면’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자직으로 돌아갔다. 소외되고 조명받지 못한 목소리를 하나씩 찾아 들었다. 어떤 기사는 실패했고, 어떤 기사는 성공했다. 목적이 이뤄지기도 했고, 때로는 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멈추지 않을 수 있던 이유는 “얼마나 나아갔는지보다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기사를 쓸 때마다 면목이 없었다는 저자는, 누구도 문제를 말하지 않는 사회에서 꼿꼿하게 문제를 문제라고 외쳤다. 저자는 기자로서 누구보다 가까이 다가선 분야가 있다는 것이, 많은 이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대단한 자산이라고 말한다.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에는 저자가 말하는 ‘자산’이 담겨 있다. “어느 촛불도 홀로 타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는 진실의 영향력을 믿고, 이 진실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는 타인에게 얼마나 따뜻했는가?

남겨진 이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
소외된 목소리를 듣고, 손을 맞잡는 일

나는 아직 여기 있고, 여전히 당신의 편입니다


생활고로 생을 마감한 어느 일가족의 유서를 읽으며, 저자는 생각했다. “이 세상의 돈은 대체 어디서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에 대해. 그들을 살리는 데 필요한 돈은 얼마였을지에 대해. 교통사고로 자식들을 한꺼번에 잃고 자동차 공장 앞에서 홀로 1인 시위를 하는 일흔 살의 사내는, 사고에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믿었다. 몇 년이 지나 그 공장을 다시 찾았을 때, 그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처럼 버스 타고 다니는 직원들이나 알겠지.”라는 말에 저자는, 정작 그의 이야기를 들었어야 하는 이들이 들을 수 없던 것이라 깨달았다. 정류장이나 서점 앞에서, 보험회사, 건설사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이들은 어떤 이들인가. 그들은 모두 시끄러워지다가도 이내 조용해졌다. 그리고는 투명해졌다. 출근길과 퇴근길, 도로 어딘가에 늘 있었지만 기삿거리는 되지 못했다. 수없이 쏟아지는 제보 속에서 ‘기사로는 만들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도 나도 헛걸음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들어주셔서 고맙다.”라는 제보자의 한마디로 저자는 오래전 세웠던 뜻을 떠올렸다. ‘거울이 되어 빛을 전하겠다’라는 초년 시절 기자로서 가진 마음가짐이다. 그들과 나눈 쓸모없는 얘기는 어쩌면 쓸모없는 이야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투명해지고 무력해지는 많은 소리를, 투박하고 귀찮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일이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낮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마땅한 이들이 그 책임을 지도록, 끊임없이 들어야 한다. 쓸모를 알고, 그 일을 해낸다는 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일은 여전히 외로운 이들에게 손을 건네는 것이다. 손을 건네고 맞잡아, 온기를 나누어 나는 당신의 편이라고, 조용한 위로를 들려주는 일이다.

김성호 기자가 고백하는 이 시대의 저널리즘,
사라지는 저널리즘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2016년, 한 청년이 수술대 위에서 목숨을 잃었다. 위중한 상태도, 불치병을 앓던 것도 아니었다. 그로부터 2년 전, 수술대 위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이들이 또 있었다. 목숨을 잃지 않았더라도 크고 작은 부작용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확인되는 피해자만 무려 10만 명 이상이다. 이들은 모두 ‘유령수술’의 피해자였다. 해당 사건으로 촉발된 의료사고에 대한 소송, 의료인을 향한 불신이 세상을 혼란케 했다. 남겨진 이들의 세상을.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3년 동안 피해자의 어머니가 1인 시위를 했음에도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의료사고 사건에서 특정 집단은 특권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고발에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 3년이 흐른 후에야, 유령수술 피해자 아버지의 소개로 저자를 만났다. 취재를 하며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한 저자는 더 이상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만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꺼내진 순간이었다. 2020년 1월부터 1년가량 ‘유령수술’, ‘대리수술’에 관해 약 50편의 기사를 써낸 저자는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가운데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저자는 본인보다 더 고된 싸움을 하는 이가 있었다고 말한다. 바로 “자식을 잃고 너덜거리는 마음으로” 홀로 서 있던 피해자의 어머니다.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단 한 명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저자는 실감했다. 사람으로서, 기자로서 저널리즘을 지키는 일이란 이런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우리는 저널리즘을 알아차릴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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